제목 지긋지긋한 '갑질'의 연쇄 끊어내기(오민석 변호사)
조회수 1,758 등록일 2016-02-15
내용

오 민 석 변호사
법무법인 산하 
  
 온 나라가 한 항공사 부사장의 항공기 회항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로 들끓고 있다. 고객서비스 미흡을 트집잡아 이미 이륙준비가 마쳐진 항공기를 돌린 행위도 문제이려니와 회사가 대신 나서 발표한 사과문도 부사장을 옹호하고 승무원에게 책임을 떠넘겨 더욱 큰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최근 벌어진 전 국회의장과 전 검찰총장의 골프장 여직원 성추행사건, 중견기업 대표의 항공사 용역직원에 대한 신문지 폭행사건, 대기업 임원이 항공기 승무원을 폭행했던 라면상무사건 등 일련의 행태와 더불어 한국 사회의 갑질병(甲질病)이 도를 넘었다고 떠들썩하다.


갑질이란 갑을관계에서의 ‘갑’과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들어진 단어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한다. 갑질에서 더 나아가 ‘슈퍼갑질’, ‘울트라갑질’이라는 신조어가 더는 낯설지 않다. 을을 하인 부리듯 대하고 자신의 잘못을 을에게 떠넘기며 선물이나 향응을 요구하는 등의 행위가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한국사회의 갑질 문화는 매우 뿌리가 깊다.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대리점주에 대한 폭언과 협박, 밀어내기는 그 정도의 차이일 뿐 국내 대기업과 영세사업주 사이에서는 다반사이다. 경영자가 종업원에게, 고객이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원청사가 하청업체에게, 공무원이 민원인에게, 갑질이 나타나는 분야와 행태도 다양하다. 이러한 갑질이 더욱 무서운 것은 갑질에 피해를 본 을이 어느 순간 갑이 되면 그 행태를 고스란히 배운다는 점과 자신에게 을의 관계에 있는 타인에게 갑질을 그대로 돌려준다는 데에 있다.

부의 양극화, 치열한 경쟁사회, 금전만능주의 등의 부작용으로 잉태된 갑질의 폐해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한국사회의 미래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통용되지 않는 사회라면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지식수준이 높아진들 구성원들이 행복할 리 만무하다. 더구나 남북분단에 지역감정으로 찢겨진 나라가 갑을관계에서까지 나뉜다면 공동체정신과 사회통합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우리 공동주택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갑질이다. 관리사무소장과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입주자대표들은 갑이다. 입주자대표들에게는 입주자가 갑이다. 공사업체와 용역업체에게 관리주체가 갑이고, 비정규직 환경미화원과 경비원들에게는 용역업체가 갑이다.

입주자대표가 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개인 용무를 떠맡기고, 관리주체가 관련업체에게 향응·금품을 제공받고 경비·미화원에게 용역업체 임직원들이 비인격적 대우를 서슴없이 하고, 입주자가 입주자대표에게 고객은 왕이라는 식의 우격다짐을 하는 갑질이 공동주택 관리현장에서 횡행한다.

경비원에게 먹다 남은 음식을 던져줬다는 강남 모아파트 입주민의 행태는 결국 경비원의 자살로 이어졌다. 매일 얼굴을 마주치고, 생활을 함께 하는 공동주택에서조차 이런 갑질이 횡행한다면 회사와 같은 조직사회,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업계에서의 갑질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공동주택은 여러 가구가 함께 모여 살기 위해 건축된 주거형태다. 더불어 사는 삶을 내재화해야 할 공동주택생활에서 우리 모두는 삶의 물리적 거리만 가까웠을 뿐이다. 공동주택에서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의 가정이 있고 인생의 역경이 있고 고귀한 인격이 있다는 사실을 깊이 각인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갑질의 폐해는 갑 스스로가 을의 입장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를 꾸준히 견지할 때 교정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잣대와 스스로에 대한 잣대를 동일하게 하는 것, 자신의 지위와 권한이 나의 노력뿐 아니라 여러 구성원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추잡하고 경멸스러운 갑질의 유혹으로부터 고결한 나를 지키는 방법이 될 것이다. 갑질을 할 수 있는 위치에서 을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것이기에…. 

 

한국아파트신문  2014. 12. 17.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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